아이돌 데뷔를 앞두고 우연히 땜빵으로 출연하게 된 드라마.
촬영장에서 가장 핫한 배우, 차주원과 마주쳤다.
“안녕하세요. 신호수입니다. 팬이에요.”
예의상 던진 말에.
“저도 팬입니다.”
전혀 예상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.
뭐지? 이거 돌려 까는 건가?
농담이라기엔 표정이 진지했다.
찜찜한 마음을 뒤로 한 채, 촬영한 드라마는 생각지도 못하게 높은 인지도를 가져다주었다.
<예쁘다><청량하다><보기만 해도 삼림에서 힐링하는 기분이다>
…비록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지만.
차주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답게 첫 화부터 대박을 쳤다.
게다가 인터뷰 중에 시청률 30%를 넘기면 첫사랑을 공개한다는
차주원의 공약은 드라마에 화제성을 더해주었다.
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….
“호수 씨한테만 먼저 말해줄게요. 제 첫사랑, 고등학교 축제에서 만났어요.
핑크색 가발이 무대에서도 확 눈에 띄더라고요.”
차주원이 말해준 첫사랑의 인상착의가 낯설지 않다는 것.
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수는 그때부터 주원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.
최대한 엮이지 않으리라.
그러나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누가 그러던가.
성공적인 데뷔 후, 고정으로 출연하게 된 공중파 예능.
신인인데도 예상보다 높은 출연료에 가슴 설레며 제작진과 함께
촬영하게 될 출연자를 만나러 약속장소에 들어선 순간.
“잘 지냈어요? 보고 싶었어요.”
호수는 반갑게 인사하는 주원을 발견했다.
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을 마주하게 된 호수는 미팅이 끝나갈 때쯤 조용히 질문했다.
“혹시 계약을 무르게 되면….”
세상 친절하던 감독이 손가락으로 계약서의 어느 부위를 가리켰다.
위약금 항목을 발견한 호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잘 해보자는 주원의 손을 맞잡았다.
“그럼 언제 들어올래요?”
손을 놓자마자 던져진 질문.
“어딜 들어와요?”
“호수 씨요. 우리 같이 살기로 했잖아요.”
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호수는 거품 물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, 위약금을 떠올리며 정신을 다잡았다.
“같이 살아야 한다고요?”
현실을 부정할 틈도 없이 주원이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못을 박았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