담담히 걸어가는 천학(天鶴)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?
천학의 입에서는 절제되어진 어조로시 한 수가 읊어져 나왔다.
수양산 산그늘에 집을 짓고 산딸기 주워 술을 담그리라
시름 잊어 나 즐거운 날 벗 하나 만들어 그와 함께 하리라.
바람이라도 불면 상념 실어 보내고 눈이라도 오면 국화나무 아래 앉아 내 떠나감을 서러워할 것이다.
세상의 벗들아 그대들은 아는가?
사는 게 부질없고 죽는 것 역시 부질없더라.
나 누워 이곳에 지낼 테니……
어서들 오시게나
<맛보기>
계유년 이월.
그 해 겨울이 끝날 무렵,
십 년에 걸쳐 피 바람을 휩쓸고 다니던 혈해지란(血海
之亂)은 드디어 끝이 났다.
- 청석평(靑 平).
녹색지면이 파란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
평원 위로 엷은 눈발이 비치고 있었다.
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 모를 엷은 눈발이 세상을
온통 하얗게 만들며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.
그리고 지면 위에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
시신들이 널려 있었다.
대지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.
한때 풍요와 활기로 넘치던 대지에는 하얗게 죽음이
내려 있었다.
눈송이는 다 식지 않은 시신들의 몸에 닿자마자 그대
로 산화해 버렸고, 수많은 날짐승들은 겨우내 굶주린
배를 채우기 위해 시신들을 파먹고 있었다.
그 거대한 평원의 한가운데 세 명의 사내들이 자리하
고 서 있었다.
세 사나이는 서로를 향해 검을 맞대고 있었다.
그들의 표정은 얼음장같이 냉막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
있는지 알 수 없었다.
아니 아무런 표정도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.
무심(無心),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마음도 깃들여
있지 않았다.
오직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살심(殺心)과 살기(殺
氣)만이 무더운 날 꽃에서 풍기는 단내처럼 풍겨 나오
고 있었다.
그 모습은 가운데 서 있는 한 사나이를 두 사나이가
둘러싸고 있는 형상이었다.
가운데 포위되어 있는 사내는 이미 전신은 피투성이였
음에도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었다.
아니, 그 기세만은 세상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
대단했다.
"크흐흐흐, 나 냉백이 너희 애송이들에게 꺾여야 하다
니...... 있을 수 없다."
냉백은 자신을 둘러싼 두 사내를 향해 비통한 어조로
말했다.
- 냉백(冷白).
그는 혈해지란을 일으킨 장본인 혈문주(血門柱) 혈마
존(血魔尊) 냉백(冷白)이었다.
그리고