뭣 모르던 어린 시절의 첫 만남은 어리숙했고, 그리하여 잔인했다.
어린 정신계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에게 거듭 거절당해 예민해지고,
어린 가이드는 강력한 에스퍼에게 두려움과 더불어 투지까지 느끼고 만다.
“저 가이드는 내 것이라고, 정해져 있어.”
“입 다물어!”
에스퍼의 능력을 견디지 못한 어린 가이드 도현은 도망가고,
늑대 수인의 본능을 제어하지 못한 어린 에스퍼 제영은 도현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.
“미안해.”
“너랑 같은 등급 가이드를 찾아. 난 너 감당 못 해.”
해가 기우는 한적한 바닷가 제방에서 둘은 다시 만난다.
능력을 제어할 줄 알게 되었지만 매번 도현의 앞에서는 실패하는 제영에게
과거의 일을 이제야 나름대로 봉합한 도현은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다.
“생각해 봐. 언젠가 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때, 어떤 말을 할 건지.”
도현의 세계는 제영이 없이도 온전하고 따뜻했다.
제영의 결핍은 도현으로 채워지지만, 도현이 넘겨받은 공허는 누구에게로 갈까.
제영은 다시는 도현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. 혼자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.
“앞으로의 모든 길을 혼자 가라고 할 때는, 부드러운 파도에 부서지라고 할 거야.”
둘만이 나눈 약속은 이별을 앞서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,
도현은 제영이 앞으로는 괴롭지 않기를 바라며 전한다.
너의 앞날에 밀려오는 파도는 이겨낼 수 없이 너를 짓이기는 게 아니라,
부디 잔잔하게 부드럽게 밀려오기를.
조금만 부서지고, 단단하게 아물기를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