귓가에 스며드는 낮은 목소리.
그 달콤한 한 마디가 머릿속을 강렬하게 파고들다 이내 심장에 가 닿았다.
차갑게 식었던 피가 다시 돌고, 얼었던 심장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.
비참했다.
저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며
매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애처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.
차라리 그를 미워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.
그럴 수만 있다면 삶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텐데.
여린 살결이 그가 남긴 흔적들로 붉게 물들어갔다.
온몸의 세포들이 그가 흘리는 감각들에 마비라도 된 듯 파르르 떨렸다.
그가 내뿜는 더운 숨결에 덩달아 달아오른 제 몸이 그저 원망스러웠다.
그럴수록 은조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.
침대 시트를 말아쥔 손목에 어느샌가 파리하게 핏대가 섰다.
“힘 빼. 이러면 당신을 안을 수가 없잖아.”
진헌이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했다.
은조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.
저 눈과 마주하면 정말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으니까.
어느덧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서로의 살결에 더욱 끈적하게 달라붙었다.
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, 정작 맞닿은 얼굴에선 그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았다.
지독히도 솔직한 본능의 발현.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오직 의무에만 충실한 섹스.
차라리 섹스가 없는 관계였다면 이보다 덜 비참했을까.
은조는 이 기묘한 관계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반추해보았다.
어쩌면 그를 만났던 처음 그때부터…….